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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대 30호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5/09/16
조회수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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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현 서 원 (紹賢書院. 黃海道 碧城郡 石潭里)


‘국시國是’란 한 나라의 사람이 일부러 꾀하지 않고서도 옳다고 인 정하는 것을 이름이니, 이利로써 유인하는 것도 아니요 위세威로써 협박하는 것도 아니로되, 삼척동자三尺童子까지도 그 옳음을 아는 것을 국시라고하는것이다.

사대사간겸동서세척소(辭大司諫兼東西洗滌疏)

‘공론公論’이란 나라를 보존하는 원기元氣이다. 공론이 조정에 있으 면 그 나라가 다스려지고, 민간에 있으면 그 나라가 어지러워진 다. 만일 조정에도 민간에도 없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만다.

대백참찬소(代白參贊疏)

‘부의浮議’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법이요, 처음에 는 미약하나 점차로 성하여 묘당廟堂을 동요시키고 대각臺閣을 뒤 흔들게 되면 온 조정이 휩쓸려 감히 막아내지 못한다. ‘부의’의 힘은 큰 산보다 무겁고 칼날보다 날카로워 그에 한 번 부딪히면 공경公卿도 그 높음을 잃고 현준賢俊도 그 이름을 잃는다.

진시폐소(陳時弊疏)

진실로 나라를 편안케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며, 진실로 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백성을 보호할 수 없다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시폐칠조책(時弊七條策)] -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인사말씀>

2019 己亥年, 세월은 흘러 三春을 보내며 바야흐로 新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自然은 어김없이 계절 따라 제 모습을 화려하게 뽐내고 있 습니다. 四時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더 말할 것이 없겠습니다.

우리나라는 三面이 바다요, 대륙에 連接한 天惠의 福地로서 그 선량한 품성과 함께 영광과 평화를 누리며 세계의 모범국가로서 우뚝 서야 마땅 할 것입니다.

하지만 흔히 治世는 짧고 亂世는 길다고 이르고, 세계는 戰亂의 시대 가 그칠 새  없었으니,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 일컫는 우리나라도 적지 않은 內憂外患의 쓰라린 경험을 겪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것은 그 만두고라도 朝鮮 中期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가까이 國際戰 성 격을 띠었던 6.25 動亂만 하더라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한 비극을 감당하여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嚴酷한 국제환경에서 민족의 활로를 찾아 국운을 개척해야 하는 情況에 당면해 있습니다.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지 만 우리 스스로의 각성과 지혜와  역량이 무엇보다 긴절히 요망된다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어느 면으로나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겠으며, 우리는 민족이 살고 인류가 평화를 누릴 수 있 는 共生共榮의 원리를 제공하고 先導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데 총 역 량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지혜를 모으는데 힘쓰는 한 편,그런  뜻에서 重峯  趙憲  선생의 학문과 실천  그리고 경세론을 탐구하는 일은 더욱 긴절한 바라 하겠습니다.

水心臺 (제30호)를 발간합니다. 지난해 기념사업회  활동의 槪況과 함께 학술발표문을 요약하여 넣었습니다. 아울러 회원들의 글모음으로 수필, 축사, 詩文 등을 실어 나누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4월 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이동준 삼가 씀



<2018년도 본회 주요활동>

2월 1일

■ 수심대 29호를 발간하였다. 이동준 회장, 조성호 이사, 이상성 이사의 글과 2017년도 주요 업무 추진 사항과 학술발표회 논문 초록 및 본회 수입․찬조 내역, 임원․회원 명단 등을 수록하였다.

2월 21일

■ 중봉사상연구 제4집을 발간하였다. 이상성, 이상익, 최영성, 김문준 교수의 발표논문 등 2016년과 2017년에 발표한 총 12편의 논문을 수 록하였다.

2월 24일




2월 24일

■ 2018년도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 일 시: 2018년 2월 24일(土) 17시

○ 장 소: 성균관대 퇴계인문관 4층 31409호 첨단강의실

○  一. 開會宣言, 國民儀禮, 祝辭

一. 2017년도 業務 報告, 監査報告, 決算報告

一. 任員改選

一. 新任會長 人事

一. 2018年度 業務計劃 및 豫算案 審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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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제1회 학술발표회 및 정기총회>


2월 24일

■ 중봉사상연구원에서 2018년도 제1차 학술발표회를 개최하였다.

○ 주 제 : 16세기 한국성리학파의 인성함양론 고찰  -퇴・율과 중봉을 중심으로

○ 발 표 : 강보승 박사 (성균관대)

○ 발언1 : 이상성 박사 (홍익여고)

○ 발언2 : 안은수 박사 (성균관대)

○ 발언3 : 참가자 일반

○ 일 시 : 2018년 2월 24일(土) 15시00분-17시00분

○ 장 소 :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4층 31409호

○ 찬 조 : 한국철학연구소(이동준) 40만원


3월 12일

■ 2018년도 임원개선 사항을 등기 완료하였다.


3월15일

■ 공익법인 출연재산 보고서를 국세청에 제출하였다.

3월 22일

■ 용산세무서에 공익법인 주소이전 신청을 완료하였다.

3월 23일

■ 배천조씨 문열공종회에서 300만원을 찬조하였다.

4월 5일

■ 김포 우저서원의 중봉 조헌선생 춘계 제향(음력 2월 중정, 2018년에는 4월5일)행사에 조종영 감사, 강보승 사무국장이 참석하였다. 본회에서 는 추모화환과 찬조금 10만원을 전달하였다.

4월 9일

■ 중봉사상연구원에서는 「한국사상의 방향,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무료 공개강좌 과정을 개설하였다.


○ 강좌 주제: 「한국사상의 방향, 성찰과 전망」

○ 강좌 개설 일시: 4월 9일부터 6월 18일까지 10주간 매주 월요일 15:00-18:00

○ 강좌 진행 장소: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3층 31313호 첨단강의실

○ 강 사: 이동준 본회 회장(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명예교수)

4월 25일

■ 대전 남간사 우암 송선생 춘향제에 송준빈 이사를 통하여 찬조금 10만 원을 전달하였다.

4월 25일

■ 서울시 도봉구 도봉서원 정암 조선생 춘향제에 화환을 발송하였다.


5월 26일

■ 중봉사상연구원에서 2018년도 제2차 학술발표회를 개회하였다.

○ 발표 1 :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두 번의 만남 - 대화와 소통을 화두로 발표자 : 최영성 교수 (한국전통문화대)

발  언 : 이상성 박사 (홍익여고)

○ 발표 2 : 학산이 본 주역과 정역 그리고 논어의 연계성에 대하여 발표자 : 김영호 교수 (영산대)

발  언 : 안은수 박사 (성균관대)

○ 일 시 : 2018년 5월 26일(土) 15시00분-17시30분

○ 장 소 :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4층 31512호

○ 찬 조 : 한국철학연구소(이동준) 40만원

6월 18일

■ 중봉사상연구원에서 개설하여 진행한 공개강좌 「한국사상의 방향, 성찰 과 전망」이 10주의 과정을 마치고 종강하였다.

6월 30일

■ 중봉사상연구원에서 2018년도 제3차 학술발표회를 개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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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제 : 孔子와 소크라테스의 철학하는 태도

○ 발 표 : 이동준 성균관대 명예교수

○ 발 언 : 참가자 일반

○ 일 시 : 2018년 6월 30일(土) 15시00분-17시30분

○ 장 소 :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4층 31406호

○ 찬 조 : 한국철학연구소(이동준) 40만원


8월 31일

■ 주민세(법인균등분, 64,370원)을 납부하였다.

9월 17일

■ 중봉사상연구원에서는 「동방사상의 현대적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무료 공개강좌 과정을 개설하였다.

○ 강좌 주제: 「동방사상의 현대적 성찰과 전망」

○ 강좌 개설 일시: 9월10일(월)부터 11월26일까지 10주, 매주 月 15:00-18:00

○ 강좌 진행 장소: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3층 31306B호 첨단강의실

○ 강 사: 이동준 본회 회장(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명예교수)

9월 23일

■ 금산군 칠백의총 종용사에서 개최된 제426회 칠백의사 순의 제향 행사 에 이동준 회장, 조성호 상임이사, 김문준 이사, 송준빈 이사, 조종영 감사, 강보승 사무국장이 참석하였고, 추모 화환을 발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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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 김포 우저서원에서 개최된 중봉 조헌선생 추향제에 이동준 회장, 조종 영 감사, 조종현 회원이 참석하였고, 추모화환과 찬조금 10만원을 전달 하였다.

9월 27일

■ 충북 옥천군 안내면 가산사에서 중봉조헌선생․기허당영규대사 추향제가 개최되었다. 본회에서는 조성호 상임이사가 참석하였고 추모 화환을 전 달하였다.

9월 29일

■ 중봉사상연구원에서 2018년도 제4차 학술발표회를 개최하였다.

○ 제 목: 유교의 孝悌思想과 老人福祉

○ 발 표: 이선경 (조선대 객원 교수)

발언 1. 함윤식 (성균관대 초빙교수)

발언 2. 김윤경 (조선대 연구교수)

발언 3. 참가자 일반

○ 일 시: 2018년 9월 29일(土) 오후 3시〜5시 30분

○ 장 소: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4층 31406호 첨단강의실

○ 찬 조: 문열공종회 조종영 회장 저녁 식사 제공, 한국철학연구소(이동준) 40만원

10월 12일

■ 제42회 중봉충렬제가 충북 옥천군 표충사에서 중봉조헌선생 추모제향 과 함께 개최되었다. 본회에서는 이동준 회장, 조성호 상임이사, 조종영 감사 등이 참석하였고, 추모화환을 전달하였다.

10월 12일

■ 대전 남간사 우암 송선생 추향제에 송준빈 이사를 통하여 찬조금 10만 원 전달하였다.


10월 18일

■ 서울시 도봉구 도봉서원 정암 조선생 추향제에 화환을 발송하였다.

10월 22일

■ 은봉 안방준선생을 모신 전남 보성군 대계서원에서 추계 제향 행사가 개최되었다. 본회에서는 추모화환을 전달하였다.

11월 20일

■ 이동준 회장이 일백만원을 찬조하였다.

11월 24일

■ 2018년도 추계 이사회를 개최하였다.

○ 일 시 : 2018. 11. 24(土) 12:30-14:30

○ 장 소 : 「일송칼국수」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로 44, 1층)

○ 보고사항: 2018년 업무 및 활동 사항

○ 심의사항 및 안건

一. 2018년도 監査報告, 決算報告 二. 2018년도 業務計劃 및 豫算案

11월 24일

■ 중봉사상연구원 2018년도 제5차 학술발표회를 개최하였다.

○ 주 제 : 임진왜란 7년전쟁의 참화와 교훈

- 東國新續三綱行實圖의 분석적 고찰

○ 발 표 : 손승철(강원대 명예교수)

○ 토 론 : 발언1 김문준(건양대 교수)

발언2 이상성(홍대부여고 교장)

○ 일 시 : 2018년 11월 24일(土) 오후3시-5시30분

○ 장 소 :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3층 50307호실

○ 찬 조 : 한국철학연구소(이동준) 40만원


11월 26일

■ 중봉사상연구원 2018년도 제2차 공개강좌 10주간의 과정을 마치고 종 강하였다.

○ 강좌 주제: 「동방사상의 현대적 성찰과 전망」  ※박스전체 삭제

○ 강좌 개설 일시: 9월10일(월)부터 11월26일까지 10주, 매주 月 15:00-18:00

○ 강좌 진행 장소: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3층 31306B호 첨단강의실

○ 강 사: 이동준 본회 회장(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명예교수)

11월 29일

■ 본회 기금 5천만원을 국민은행에 1년 만기로 재예금하였다.

12월 18일

■ 본회 회원에게 연하장을 발송하였다.


[회원의 글1]


알타이산맥 기행

조성호(본회 상임이사)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요즘 늙어서 고생을 사서 한다. 고조선 유적 답사팀을 따라 몽고 고비사막에 있는 알타이 산맥 답사 길에 나섰다. 갈 때부터 안 것이지만 텐트에서 2박, 밥은 조별로 해 먹는 일정이 많았다.

9박 11일 거리는 3,000 km 정도를 가는 여행이었다. 저녁은 비행기 안 에서 먹었고 밤 열시 반쯤 도착했는데, 운전기사 포함 6명이 한조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이라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얼마를 가더니 도로변 풀밭에 차를 세운다. 일행은 다 내렸고 운전기사도 내려서 담배를 피운다. 나는 더듬거려 좀 떨어진 곳에서 소변을 보았다.

떠나기 전 주의 사항이 몽고 사람들은 물을 신성시하기 때문에 강에 대고 소변을 보면 여행을 못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강물에서는 겨우 설거지는 했 지만 양치질한 물은 못 뱉게 한다. 산에서 흐르는 계곡 물에서는 그릇도 못 씻게 한다. 몽고 사람들은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 니 발을 씻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런 문화차이는 많은 불편을 주었 다.

캄캄한 밤하늘을 보니 별이 크고 가까이 보인다. 고도가 높아서 그렇다 고 하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늘이 맑아서 그런 것 같다. 얼마 쯤 가다가 시간을 보려 핸드폰을 찾으니 없다. 차 바닥에 떨어졌겠지 싶어 아무리 찾아도 없다. 옆자리 앉은 일행이 같이 찾아보아도 없다. 전에 잠간 쉬어 소변볼 때 잊어버린 것 같다. 잊은 것으로 단정하니 여행도중 불 편 할 것 같고 국내 가서 새로 산다고 하지만 내장된 것에 대한 불편함 등 이 생각난다. 이런 일 정도에 내 마음이 이다지 불편하다니 마음공부를 했 다고 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마음은 더 불편했다.

핸드폰을 잃은 지 하루 반 만에 우리를 안내하는 몽고인이 가지고 왔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채뜨리듯 받아들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차 안에 서 잠을 자는데 의자 밑 구석에서 소리가 나 찾았다는 것이다 배터리가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몇 시간 불편했던 마음이 싹 가셔 버렸다. 이 런 작은 것에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은 주로 차속에서 보내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여행 길에 나섰다는 어느 여 사장은 마치 지금 저승길을 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저승길 갈 때는 모든 걸 다 내려놓아야 하니 그런 생각이 들만하다 싶다. 나는 지평선 넘어 신기루를 찾아 가는 것 같다. 우리가 산다는 게 오아시 스를 찾아 가는 길 아닐까 싶다.

밤 12시가 다 되어 여관에 일행을 풀어 놓았다. 밥을 할 시간도 없어 굶 을 판인데 일행 중 미숫가루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있어 두어 컵 먹고 잤다. 아침은 미숫가루에 빵 두어 조각을 먹었다. 자던 이층에 올라 가보니 아무 것도 못 먹은 세 사람이 있어, 우리가 먹던 빵을 가져다주었다. 먹을 생각 을 안 하고 있어 왜 안 먹느냐고 했더니 빵을 보여주는데 곰팡이가 피어있 다. 곰팡이를 보니 갑자기 뱃속이 이상해진다. 다시 가지고 와 같이 먹은 일행에게 보여 주었더니 겉만 그렇지 속에 있던 빵은 괜찮다고 한다. 그 말 한마디로 금방 속이 아무렇지도 않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실감난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세 시간에서 네 시간정도 걷는 것이라도 얻어 가려 했는데 그런 시간마저도 주지를 않는다. 그래도 틈틈이 걸었다. 이런 모습 을 보고 이상히 여긴 일행이 묻는다. 나는 친구와 죽는 순간까지 걷다 죽 기로 약속 했다고 했다. 그 친구가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 다. 약속이란 항상 안 지키는 사람만이 손해라고 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처음에는 남을 손해 보이고 본인이 득이 되는 것 같지만 언제인가는 잃어야 하는데 그때 당하는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해 뜨는 것을 보기위해 모래  산 능선으로 올라갔다. 모래 비탈길을 올 라가는 것은 요령이 있어야 한다. 몇 발작 올라가다보면 미끄러져 제 자 리로 돌아온다. 능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끄러지면 더 허탈감에 빠 진다.

능선에 올라 주변을 보니 죽은 나무들이 한두 그루 보이고 멀리 계곡에 는 이십 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런 곳에도 생명체가 있을까 싶었 는데 모래 위에 새 발짝이 있다.

사막에서 해 떠오르는 것은 모래 속에서 붉은 알이 나오는 것 같았다. 저 알에서 나온 사람이라면 재세이화, 홍익인간 세계를 만들어 줄 탠데 싶 다. 후천 세상에서는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잘 살아 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내 생전에는 안 올 것 같다. 그렇 다면 나는 다른 사람 피해를 안주는 범위에서 내 행복부터 찾아야겠다. 그 래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은 설악산 대청봉을 올라가는데 거의 다 가서 눈 폭풍이 몰아 쳤다고 한다. 안 올라갈 수도 없고 해서 강행을 하다가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고 한다. 그때 찍은 사진이 있어 사무실 벽에 걸어 놓고 어려운 일 이 생길 때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이겨나간다고 한다.

극한 고행은 우리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다.


[회원의 글 2]

죽도 밥도 아닌 인생

조성호(본회 상임이사)

마음을 비운다고 헤맨 지 어언 삼십여 년이 됐지만 아직도 그 말의 뜻조 차 터득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비워야 된다고 하고, 또 어떤 사 람은 욕망이 없으면 죽은 생명이라고 한다.

아는 것은 많은데 말을 잘 안하는 스님이 있다. 마음을 비우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깨달음은 “부끄러움을 알아차리는 것,” 이라고 한다. 젠장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나는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다. 다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확끈 거릴 때가 많다.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있지는 않지만 아무튼 부끄러운 짓은 많이 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부끄러운 짓인지 아닌지 모르고 할 때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도를 터득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수소문 해봐도 만날 수 없었다. 언제인가 일박이일 세미나에서 옷 나무를 연구하는 사람을 만난 일이 있 다. 그는 공부를 끝내고 도를 얻었다고 하면서 자기는 그런 것을 강의를 한 다고 한다.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도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다. 여럿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가운데 놓인 생선찌개 냄비에서 냉큼 제일 큰 토막 을 골라 그의 아내에게 주는 걸 보고 저런 게 도인가 싶어 혼자 웃었다.

우화 하나가 생각난다. 토끼가 천 냥을 모아 행복을 찾아 떠났다고 한 다. 부지런히 가다  보니 거북이를 만났다. 거북이가 토끼님 어디 가세요 하고 묻는다. 천 냥을 가지고 행복 찾아 간다고 하니 거북이는 저에게 삼 백 냥만 주면 행복 찾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토끼는 삼백 냥을 주 고 방법을 배웠다. 토끼님처럼 빨리 가면 행복을 못 찾으니 나처럼 천천히 걸으라고 했다. 그래서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본성을 참지 못 해 얼마 못 가서 뛰게 되었다. 행복을 찾지 못하고 또 방랑의 길을 또 걷 다가 노루를 만났다.  노루도 도끼처럼 어디가세요 한다. 토끼는 칠백 냥 을 가지고 행복을 찾아 간다고 했다. 노루는 이백 냥만 주면 행복을 찾아 준다고 했다. 이백 냥을 받은 노루가 그렇게 천천히 가면 행복을 찾을 수 없으니 나를 따라 오라고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따라 갔지만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지친 몸을 끌고 또 행복을 찾아 가다가 이번 에는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가 너 어디 가느냐 하고 묻는다. 지금까지 지나온 이야기를 했더니 호랑이는 엉터리 같은 사기꾼들을 만났군 하면서 오백 냥을 주면 진짜 행복을 찾아 준다고 했다. 호랑이는 오백 냥을 받고 토끼를 덥석 잡아먹었다.

나는 가끔 스님이나 신도들을 만났을 때 인사말로 성불하세요 하면 그 들은 좋아 한다. 그런 빈말 한 마디에도 좋아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인들 못 할까 싶다가도 죽으면 자동으로 성불하는 것을 그 노력으로 농사나 지으 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지금까지 우화처럼 살았다. 행촌 선생님과 대화에서 사는 게 시간 때움이라 하던데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때울까를 생각하며 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잘사는 것이지 하신다.

아프리카의 죽어가는 생명, 북한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예로 들며, 자신의 건강과 쾌락만 찾는 것은 짐승과 같은 삶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조그마한 사랑도 몰 랐구나 싶어 망치로 머리통을 맞는 것 같다.

내가 자랄 때는 구호물자 옷과 우유, 버터를 얻어먹으며 살았는데 지금 은 잘 먹고 살면서도 그때 진 빚도 못 갚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자책하기도 한다.

 진작부터 이천 원짜리 점심을 만 원짜리처럼 먹고, 아낀 팔천 원을 밥 굶는 나라에 보내면 될 것을 이렇게 쉬운 것을 생각 못했으니, 자신의 앞

만 보고 살아 온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느 절에 갔더니 ‘당신이 곧 부처이십니다.’ 하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합리화시키는데 도가 튼 나는 내가 곧 하느님이야, 하느님이 하느님 뜻대 로 사는데 누가 무어라고 할겨! 하는 생각으로 살던 때가 생각나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지금까지 죽도 밥도 아닌 생을 살아 왔다. 시골에서 혼자 아침을 먹을 때 찬밥에 북어포와  불린 콩을 넣어 죽도 밥도 아니게 끓여, 전날 아내가 싸준 다섯 가지 채소로 쌈을 싸서 다섯 가지 향을 느끼며 먹으면 서 혼밥이지만 참으로 호사스런 아침 같았고 행복했다.

 천방지축 죽도 밥도 아닌 인생을 살았지만 행복한 세월이 더 많았다. 아직 해외여행이 개방되기 전인 86년, 기업인 연수로 프랑스에 가서 리도 쇼를 보았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입장할 수가 없었다. 키도 몸 매도 다 같은 무희들이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들만 모아 놓은 것 같았다. 그 무렵에 본 무랑루즈 쇼는 환락적인 지상의 낙원 같아 대조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 가는 대로 살아 온 것 같다. 이런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은 자유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고집이 세다고도 한다.

언제인가 친구가 나가는 로타리클럽에 들어오라고 한다. 그곳에 오면 내 가 하는 사업에 도움이 될거라고 한다. 거절을 했더니 내가 잘 아는 후배 에게 설득을 하라고 했다. 그는 대뜸 그 형님 고집을 누가 꺾어요.

 운이 좋아 회사가 잘 돌아 갈 때는 아침에 출근 하면 누구와 어울려 점 심을 먹는 것이 즐거우며, 저녁에는 누구를 만나 즐길까 하는 생각으로 살 았다. 업무로 만나는 일이 많지 않으니 미리 약속하고 신경쓸 일도 없었 다. 지금 그 일마저 없어졌으니 더 행복해야 하는데 전에 살던 것과 별 차 이를 못 느낀다.

사는 게 무얼까, 이제 무얼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 지 않고 있다.

이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죽이면 죽, 밥이면 밥이 분명해 하련만 아직도 불만 때고 있는 꼴이니 딱한 일이다.


[회원의 글 3]

‘휴(休)’ 콘서트 100을 기리며

이동준(본회 회장)

여기 정동(貞洞) 성 프란치스코 교육관 1층 북 까페,

참으로 착하디 착한 선남 선녀, 노소 없이 모이는 곳,

달마다 첫 수요일 저녁 7시 30분

2010년 3월 3일 첫 모임일러니

2018년 8월 1일 100번 째 모임이라 하네.

뜻과 뜻이 만나 얼굴 맞대고

등불 댕기며 새 세상 열었으니

또 하나의 생명 공간 탄생일세라

산 다미아노와 서울튜티앙상블 어울림이여!

음악으로 어울리는 ‘휴’(休) 콘서트, 이곳은 어떤 곳이뇨?

오늘로 100회를 기록하는 작은 공동체, 이곳은 어떤 곳이뇨?

아마도 이곳은

종교적 영성과 예술적 감성이 하나로 승화(昇華)되어 

인류의 오랜 염원을 담아내며 조물주의 오묘한 섭리를 떠받드는 어여쁜 무대이며 거룩한 제단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아주 작은 공동체 이곳은 마치 아주 작은 씨앗과도 같이

그 아무리 작아도 무엇보다 단단하고

그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으며

새 봄을 맞아 싹 터 나올 꿈을 싣고

살아 움직이는 바탕이요 터전이 아니겠는가?

일찍이 옛 성현은 하늘을 대신하여 이르셨다네:

지구 사람들, ‘어질고 올곧음을 날줄로, 섬기고 풀어줌을 씨줄로’라고; 인애[仁]와 의리[義] 그리고 예법[禮]과 음악[樂]을 그대들의 몸으로 하 라고. 또 ‘시(詩)에서 일깨우고, 예(禮)에서 바로 서며, 음악[樂]에서 완성 한다’라고도….

<수요 콘서트>의 ‘休’라는 글자는 본디 ‘쉼’과 ‘아름다움’이란 뜻이 있다오. 일상생활에서 휴식은 반드시 필요하지요. 하루의 절반은 밤[夜]에 속한

다오. 그리고 인류는 또 어떤 공포에서도 벗어나 안심입명(安心立命), 진 리의 품속에서 우리의 정신이 완전히 쉴 수 있어야 할거요. 

호화 사치는 그만두고라도 의․식․주는 최소한 확보되어야 할 터이지요. 하지만 우리 인류는 보다 고매한 정신세계, 진․선․미․성을 갈망하지요. 

헌데, 우리 인생은 이 모든 것이 얽혀있는 존재라오. 희노애락과 희비애 환은 사람에게 밀착되어 떠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우수사려(憂愁思慮) 는 늘 따르는 것이어니, 우리가 목석(木石)이 아닌 바에야 그것을 내버리 기 보다는 어떻게 아름답게 받아들여 삶의 빛을 더하는 자양분으로 삼을 것인가, 이 또한 예술인의 몫이 아닐는지요?

늪 속 어두운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땅 속 깊은 광맥에서 금강석 을 캐내듯이.

콘서트 ‘휴’(休)는 또 어떤 곳인가요?

열매이며 씨앗인 이 작은 공동체 속에는 또 무엇이 들어 있나요? 하기는 시성(詩聖) 타골(R. Tagore)은 이르기를, “신(神)께서는 거대한 

왕국은 싫증을 내시지만 쪼꼬만 꽃들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 는다.” 했지요.

지구에는 율려성(律呂聲)이 있다오. 6률 6려, 움쑥 불쑥 12율려가 있다오. 들릴 듯 말 듯, 음률과 선율이 우리의 악상(樂想)과 청각(聽覺)을 감싸고 

있다오. 오직 온 몸으로만 느껴지는 음률의 바다가 장구한 우주공간을 가 득 채우고 있다오. 온갖 것이 우주의 한복판에서 생명의 흐름을 마시며 맥 박과 율동에 맞추어 시를 토하고 노래하며, 춤추고 약동한다오.

여기 이곳 쉼터에 지구상 인류의 대표자들이, 연출자와 주자(奏者)와 청 중들이 너무나 겸허하고 검소하게, 누가 점지했는지 알게 모르게 만남의 인연을 붙여, 싹트고 자라며, 꽃피고 열매 맺기를 지속하나니, 그 누가 일 찍이 알았으료? 여기 이곳,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을!

여기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존엄한 세계, 하나하나의 뚜렷한 개성을 지닌다오. 아울러 나와 너와 우리가 한 없이 열려있는 소통의 마당이 있다 오. 남녀노소도, 청소년도, 장년도 노년도, 어느 누구도 가로막는 장벽이 없다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곳엔 차별이란 낱말 이 존재하지 않는다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일 뿐!

클래식, 국악, 재즈, 가요, 퓨전 … 색다른 장르가 모두 포함되네요. 관악 기, 현악기, 타악기 줄줄이 다른 악기… 육성(肉聲) 테너, 바리톤, 베이스, 그리고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앨토, 솔로, 실내악, 협주곡, 그 어느 것 도 모두 함께.

정동 북카페, 병원, 그리고 콘서트 홀까지 포용하면서, 환자들과 일반인 을 말할 것 없이 하늘  메시지를 음률로 전달하여 각자가 자기 영성에 빠 지도록 하나니.

청소년, 기성인, 국내외 석․박사; 학생 교수 할 것 없이 모두 다가 주인일세! 모두의 뜻 한 자리에 작은 공동체 만드나니

아름답고 잔잔하며, 은은하고 힘찬 생명,

시가 노래로 춤추는 새 세상 출발점으로!

불사조여 비상(飛翔)하라!

작은 것이 아름답고, 애 큰 것이 어른이로다.

그런데 일 맡은 주인은 그 누구인가요?

어느 선각자가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해와 달이 아니면 빈 껍질이요;

해와 달도 지극한 사람[至人]이 아니면 헛된 그림자다.” 라 하였지요.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사람은 하늘이 내는 것!

오 천사들이여, 심부름꾼이여!

함께 마음 아픈 이여, 오 승리자여! (2018. 8.)


[회원의 글 4]

콩 타 작

조하전(趙夏田)

도리깨질은 못하는 사람도 없지만 잘하는 사람도 드물다.

잘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잘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요령을 터득해야만 한다.

점수를 매기는 일이 아니라 배우는 곳도 가르치는 곳도 없다. 일 못하는 목수가 연장 탓만 한다고 도리깨도 크고 굵다고

잘 털리는 것은 아니다.

잘못하면 타작마당만 버려놓는다.

초심자는 급하게 힘으로만 한다.

그러다 보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경험이 있어도 자만에 빠진 사람은 초심자와 마찬가지다.

잘하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막걸리로 입을 축인 다음 부드럽게 자근자근 두드려 준다.

길이 나지 않았다 싶으면 손바닥에 침을 탁 바르고 시작을 한다. 후려치는 것에 속도가 붙으면 콩은 숨 가쁘게 터진다.

길이 나는 가 싶으면

자세를 바꾸어가며 타작마당을 빙빙 돈다.

질펀하게 돌고 나면 콩은 콩대로

껍질은 껍질대로 뿌연 연기를 피며 타작은 끝나게 된다. 타작이 끝나면  잔잔하고 나른한 행복에 젖게 된다.

세상사 모든 것이 힘으로 되는 것이 없듯이

타작을 잘 하려면 힘을 빼야한다.

기, 승, 전, 결은 글 쓰는데 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작하는데도, 살아가는데도 있어야 한다.


[회원의 글 5]

가이드의 눈물

이행촌(杏邨)

당초에 김천金泉이 고향일 줄은

아예 몰랐지요

당초엔 하노이 하롱베이는

이름도 몰랐지요

팔년 전 어느 회사 직원으로

월남 땅을 디뎠는데

두어 해 뒤 가이드가 낫겠다 싶어

직업을 바꿨다죠

가솔家率은 고향 땅에 그대로

일 년에 두 번 쯤 다녀온다죠

딸 하나는 카나다에 보내 놓고

기러기 이산가족으로 지낸다죠

가지각색 관광객 감동시킬 입담과 함께 현지 소식 뉘에게도 거슬리지 않게

순발력을 발휘하며 두뇌개발을 해야하죠

경주 김씨 신라 왕손 김부장!

자연관광 사회관광 문화관광

그리고 아주 중요한 상품관광까지

드디어 토설吐說하는 

가이드의 눈물이여!

새해에는 터키까지 보폭步幅을 넓히시겠다며? 그러세요

김천에 뿌리박고

하노이 터키 카나다로 벨트를 엮으세요

행운을 빕니다

성의와 진실 앞에 당할 장사가 없지요 (19.1.1. 과천)


[2018 논문초록 1]

16세기 한국 성리학파의 인성함양론 고찰

-퇴・율과 중봉을 중심으로-

강보승 성균관대 인성교육센터 책임연구원

1. 서 론

2. 퇴계의 리발설과 인성함양

가. 퇴계 리발설의 특징과 인성함양과의 관계 나. 인성함양의 방법과 실제

다. 양지설과 리발설 비교와 실천론적 차이점

3. 율곡의 기질변화론과 인성함양

가. 율곡의 기질변화론

나. 인성함양의 방법과 실제

다. 인성함양에 있어서 순자와 율곡의 차이

4. 중봉의 實踐精神과 인성함양

가. 중봉의 학문과 실천정신

나. 중봉의 인성교육론

다. 실천정신의 공동체적 확산과 완성

5. 결 론

퇴계와 율곡의 인성함양론에 있어서 리발과 사단을 중심으로 하는 퇴계

의 인성함양론과 기질변화론을 중심으로 하는 율곡의 인성함양론은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인성함양의 구체

적 실천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계와 율곡은 차이점이 그리 많지 않다. 이 런 점에서 “理의 具現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氣를 대상으로 일련의 노력 이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 성리학 공부론 노선의 특색이며, 따라서 공부론 에 관한 성리학의 논의는 항상 論性과 論氣를 겸비한다. 論氣가 생략된다 면 주자학이 아니다. 퇴계는 이점에서 성리학 노선에서 한 발자국도 일탈 하지 않았다.”라는 論及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퇴계가 리발을 제시하였지 만 실천은 氣 상에서 한다는 점에서 율곡과 다르지 않다. 특히 중봉의 경 우 학문 학문과 실천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퇴계와 율곡이 추구한 氣 상에서의 인성함양 방법의 이상적 모델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퇴계의 리발과 율곡의 기발도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리발 설로 도덕 주체를 확립을 강조하였던 퇴계에 비하여 율곡은 理 무위를 견 지함으로 인해 도덕 주체에 확립에 소홀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선 의 전제 하에 순선한 본성을 기질변화를 통하여 회복하려 하였다는 점에 서 볼 때 율곡 또한 도덕 주체 확립에 적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도덕 주체 확립의 실제적 방안에 있어서도 퇴계는 居敬을 율곡은 誠意를 강조 한다는 면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겠으나, 居敬와 誠意 모두 체화된 자기 주재력을 의미하고 이를 통해 ‘氣’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리발․기발, 인심․도심, 사단․칠정 도덕주체확립, 기질변화 등 인성함양의 학문적 기반과 방법적 차이를 드러내는 개념들이 많고, 인성함양에 있어 리의 발현이 중요한가 기질의 변화가 중요한가 하는 등의 견해가 대립하 지만 결국 퇴계와 율곡, 중봉 모두 근거는 理이고 방법은 氣이다. 그리고 특히 氣를 중심으로 하는 인성함양의 실제에 있어서 중봉의 삶은 이상적 인 실천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道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도덕 주체의 본성과 비근한 事事物 物 어디에나 道가 있지만, 일상을 떠나서는 그 어디에도 道는 없다. 퇴계와 율곡, 중봉의 학문과 실천이 혹 다르고 혹 같지만 그 종착점은 순선한 본성 의 실현이고 그 시작은 지금 바로 여기의 내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2018 논문초록 2]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두 번의 만남

-대화와 소통을 화두로-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Ⅰ. 머리말

Ⅱ. 23살의 청년이 58세의 老大家를 찾다 Ⅲ. 안동 ↔ 강릉에서의 서신 교류

Ⅳ. 두 번째의 만남과 퇴계의 별세

Ⅴ.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그리고 대화와 소통

퇴계와 율곡은 35년의 연배 차이가 있다. 또 퇴계는 율곡보다 15년 앞 서 세상을 떠났다. 35년 선배가 후배를 정식으로 평가하는 일보다 후배가 선배를 평하는 일이 많을 것임은 더 말할 것이 없다. 후일 퇴계의 후학들 과 율곡의 후학들 사이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갈등은 퇴율 양현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기보다는, 후학들의 정치적, 학문적 입장 때문에 파생한 것 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성리학에서의 리기심성(理氣心性)의 문제 등 일부 에서 양현의 견해가 합치되지 못하였지만, 그것이 학파적 갈등 양상을 넘 어서 정치적 대립 관계로 발전한 것은 조선 후기의 학술사-정치사의 특수 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율곡이 남을 평가하는 데 인색 하다보니, 퇴계 후학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소지가 적지 않게 있었음은 인 정해야 할 것이다.

율곡은 율곡학파에서 ‘동방의 춘추’라고 일컫는 석담일기(石潭日記)를 남겼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연상케 하는 엄정한 평가로 유명하다. ‘율곡 의 붓끝 아래 완전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여기에 연유한 것 같다. 그러나 후학 중에는 율곡이 호오(好惡)의 감정을 지나칠 정도로 드 러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예컨대, 고봉 기대승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비판적이었음을  들  수  있다.  서인계  후학인  박세채(朴世采: 1631-1695)가 “율곡이 남명 조식을 너무 추허(推許)하고 고봉 기대승을 너무 폄하한 점, 그리고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을 지나치게 공격한 점 이 세 가지는 그것이 어떠한지를 잘 모르겠다.”라고 할 정도였다.

율곡은 리기설에 대한 견해를 말하면서도, 퇴계보다 정암(整庵) 나흠순 (羅欽順: 1465-1547)을 더 높이 평가하였으며, 화담 서경덕을 자득지묘 (自得之妙)가 있다고 하면서 퇴계의 의양지미(依樣之味)에 견주었다. 여기 서 의양의 대상은 주자이니, 이 말은 ‘주자처럼’ 되기를 추구하는 기미가 있었다는 말이다. 또 퇴계에 대해 대유(大儒)로 추중(推重)은 하면서도 ‘특 별한 저서가 없다’(無別著之書)라는 등 은연중 완인(完人)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였다.

율곡은 자주 “퇴계의 병통은 ‘호발’ 두 글자에 있다”고 단언하였다. 또 그것을 ‘지견(知見)의 누(累)’라고도 하였다. 그는 기발리승에 대한 확신이 넘친 나머지 “만약 주자가 진실로 리와 기가 상호 발용(發用)하여 상대적 으로 각출(各出)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는 주자 또한 잘못이다. 어떻게 주 자가 될 수 있겠는가”(若朱子眞以爲理氣互有發用, 相對各出, 則是朱子亦誤 也, 何以爲朱子乎)라고까지 하였다. 그는 퇴계의 리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 之)는 분명 리기에 선후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또 리발기수에 대하여 ‘막 발할 즈음에는 기의 간섭(干涉)이 없다가 발하고 난 뒤에 따라서 발하 는 것’이라고 곡해하기도 하였다. 이는 퇴계의 입설(立說) 취지와 같지 않 다. 한 후학의 지적대로, 율곡은 통견대원(洞見大原)하는 영명성이 남보다 앞서고 기상이 쇄락(灑落)한 탓으로 강론(講論)할 즈음에, 간혹 남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점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경솔하다는 지적’(率爾)之病)은 이런 점들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리기심성에 대한 율곡의 견해는 기대승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기대승의 영향을 부인하였다. 기대승의 성리학에 대한 조예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논심성정(論心性情)」이라는 글을 보면 “내가 강릉에 있을 때 기명언이 퇴계와 사단칠정에 대해 논한 서한을 보 았는데, 내가 볼 때 명언의 말은 나의 의견과 꼭 합치된다[正合我意]”고 하여, 견해가 서로 부합함을 우연으로 돌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 음을 은연중 부각시키고자 했다.

필자는 일견 율곡설이 퇴계설과 대립되는 듯 하지만 종국에는 귀일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퇴율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일부 뜻 있는 후학들에 의해 시도되었고, 일정 부분 이루어졌다. 겉으로 보면 조선후기 성리학사가 대화와 소통을 외면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돌이켜 볼 때, 17세기 중반, 학파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당파적 감정까지 가미되어,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사이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20세기까지 지 속되었다. 내면적으로는 상대편의 핵심과 논점을 상당 부분 이해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공격과 비판 일색이었다. 학파 또는 정파 간의 간극이 너무 도 컸고, 그러한 상태가 누백년 계속되면서 학자들이 자유롭게 말하거나 토론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정통 퇴계학파는 퇴계에 대한 존숭의 정도, 리기호발설에 대한 지지의 정도가 강한데다가 반율곡 적 성향이 강하여 율곡설과의 관계를 논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에 비해 근기 남인을 비롯한 비주류 학인들의 경우, 퇴계의 학문과 성리설을 근거 로 율곡을 비판했지만, 율곡의 성리설과 그의 논리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 았다. 율곡의 주장을 드러나지 않게 수용하기도 하였다. 답습 일색인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움직임이 있었고, 율곡학파의 학설을 의식 하고 수용하여 조선 성리학사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있 었다.  영남  퇴계학의  중조라  할  수  있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은 분개를 주로 하면서도 혼륜을 아우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후 그것이 영남 퇴계학의 전통이 되었다.

율곡학파는 퇴계학설의 수용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편이었 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사이를 좁히고자 노력했던 것은 기호학파 학인 들이 선편을 쳤다. 기호학파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는 농암 김창협 계 열은 학통상으로 율곡학파의 계통을 이었고 정파상으로도 노론에 속하였지 만, 율곡의 학설에다 퇴계의 학설을 수용하여 ‘제삼의 학설’을 이끌어냈다. 이들은 ‘농암문파(農巖門派)’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세력을 형성하였고 그 계통이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또 김창협을 전후 한 시기에 활동하였던 박세채(朴世采)⋅조성기(趙聖期)⋅임영(林泳) 등 소론계 학인들 역시 율곡 학파의 우산 속에 포함되는 학자군이면서도, 율곡 학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퇴계의 설을 수용하여 이른바 ‘절충파’를 형성하였다. 여기서 기호 학인들 의 성향⋅기질, 나아가 기호학파의 학문 풍토와 배경 등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퇴계와 율곡의 만남, 그리고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대화와 소통에 서 ‘성주’를 연고로 한 학인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특기해야 할 것 같다. 율 곡이 성주와 연고를 맺은 뒤, 율곡의 아우 이우가 선산의 황기로의 딸과 혼 인하여 선산에 정착함으로써, 후일 영남에서 율곡학파-노론학파가 뿌리를 내리는 데 상당히 기여하였다. 또한 성주 출신으로 율곡의 문인이었던 이 윤우(李潤雨: 1569-1634)의 공이 매우 컸다. 이윤우는 율곡의 문하에서 배우다가  16세  때 율곡이  세상을  떠나자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 1620)를 사사(師事)하여 졸업한 인물이다. 스승 정구와 함께 회연서원(檜 淵書院)에 배향되었다. 그는 이른 시기에 율곡이 별세함으로써 학업을 제 대로 성취하지 못하였으나, 율곡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친자(親炙)하기로는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이⋅정구 양문에서 수학한 이윤우는 양현의 학 문 성향을 한 몸에 체득하여 일정한 가교적 역할을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바야흐로 대화와 소통이 시대적 화두가 되었다. ‘지천태(地天泰)’ 괘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할 시대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를 대립적 관 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당파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퇴계와 율곡은 사실상의 스승과 제자다. 학설상으로도 일부 차 이가 나는 것을 빼놓고는 다른 점이 별로 없다. 반목할 이유가 없다. 이점 20세기 현대인들에게 퇴율이 던지는 메시지라 하겠다.


[2018 논문초록 3]

鶴山이 본 周易과 正易 그리고 論語의 연계성에 관하여

김영호 영산대학교 교수

Ⅰ. 학산의 주역 및 정역과 논어의 연계성에 관한 견해

1. 공자의 출생에 대하여

2. 공자의 讀易 고사에 대하여

3. 공자에 대하여

4. 논어의 편제 및 구성에 대하여

5. 논어의 자구에 대하여

6. 논어의 장과 주역 연계성에 관하여

7. 공자와 정역 성립에 대하여

8. 논어와 정역 연계성에 대하여

Ⅱ. 論語 ‘五十學易章’의 正易적 解釋 再論 1.  鶴山 李正浩선생의 正易적 해석

2. 五十學易章의 正易的 辨釋

鶴山 李正浩 선생(1913-2004)은 온 일생을 공자의 주역과 一夫의  正易의 연찬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일부의 정역은 물론이거니와 공자 가 주역에 비장한, 그야말로 공자의 미언대의를 많은 부분 발굴하여 남 김없이 공개하였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로 선생의 만년에 말석을 차지하 여 강의를 듣는 영광을 누렸었다. 이하의 글은 학산을 사사하면서 특히 필 자의 관심분야인 공자와 논어, 주역의 연계성에 관한 것을 두서없이 조략하게  서술한 것이다.

학산의 주역과 논어의 연계성에 관한 기술은 주역정의 건괘 해설 의 것이 유일하다. 따라서 본 글은 필자가 선생의 강의와 대화 중 평소 관 심 있는 공자와 논어 관련 부분을 기억에 의지하여 서술하였음을 밝힌 다. 따라서 일부의 내용은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문헌 자료는 주역정의

와 정역과 일부 학산산고를 활용하였다.

후면에 참고로 이전에 본 모임에서 발표하였던 필자의 졸문에(학산 10 주기 기념. 論語 ‘五十學易章’ 解釋의 檢討) 다시 우견을 보완한 論語 ‘五十學易章’의 正易적 解釋의 일부분을 부기한다. 이를 통해서 학산의 

논어에 대한 정역적 해석과 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필자의 해석을 규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전해석의 세계는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 맹목적이고 묵수적이며 배타 적인 태도는 오늘날과 같이 동서가 회통 화합하는 열린사회에는 바람직하 지 않다. 우리는 공자의 참된 원의를 파악하여(救世정신, 우환의식) 오늘 에 되살려 모두가 자기 자신을 확립하고 자기 소명에 충실하며 다 같이 행복한 유리세계를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 그것이 공자의 뜻을 오늘에 되 새기고 진정으로 되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일찍이 「易序」에서는 드러나지 않고 나타나지 않은 것은 명칭으로써 구 할 수 없다고 말하였거니와 본 논고는 논어 ‘오십학역장’에 나타난 공자 의 뜻을 역대 제가의 주석을 분석, 검토, 정리한 바탕 위에 학산설을 바탕 으로 정역적 입장에서 조략하게 추리하여 시론적 고찰로써 서술한 것이 다. 孔門原義를 파악하고자 하는 衷心이었지만 부분적으로 무리한 해석이 있을 수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진정한 공자사상의 요체를 탐색하는 방법론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2018 논문초록 4]

孔子와 소크라테스의 철학하는 태도

이동준 성균관대 명예교수

1. ‘나’로부터

2. 학구적 태도와 논리적 탐구

3. 神秘性에 대하여

4. 사명과 신념

5. 死生과 義理

6. 動機와 豫知

소크라테스에게서 문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너 자신을 알 라”는 표어는 이를 단적으로 표시한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하는 신탁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하여 당시의 현자들을 차례로 방문했던 바, 이들 역시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는 잘 알고 있 다.”고 믿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과 관계 없는 갖가지 지식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문제를 돌린다. 그리하여 인식 의 출발에서 知‧不知의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論議의 건전성을 인정하고, 다만 우리는 현재 건전 한 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고 가정하고서, 건전하게 되고자 노력하자.”고 한다. 따라서 논리적 추구를 통하여 우리는 어떤 항구불변의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공자는 學을 말하였다. 공자는 “아래에서 배우고, 위로 通達한다.”는 것 이니, 가까운 것의 배움으로 철저화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그래 서 學의 탐구를 그치지 않았으니, 공자는 스스로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 에 뜻을 두었다.”고 하였다.

공자와 소크라테스에게서 진리탐구의 논의란 그 내용과 진실성이 문제 이다. 그래서 표현하는 방법에 의존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말과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사람으로서 어진 사람이 거의 없다.” 하고 “교묘한 말이 덕을 어지럽게 한다.”고 하였다.

논리적 탐구를 끝까지 추구하려는 소크라테스에게 다른 커다란 면이 있 다. 그것은 그의 신비성이다. 우리는 대화록 「변론」에서 델포이신전에 참 례하고 神託에 의하여 행동하는 소크라테스를 볼 수 있다. 그는 의문되는 점이 있으면 으레 신탁에 물었으며, 그가 신탁에서 알게 된 것 가운데 하 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나, 사실은 神만이 지혜롭고, 인 간의 지혜는 가치가 거의 없거나, 전무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 는 신의 뜻에 절대적인 복종을 한다. 그는 그리스 전통의 신을 부정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런데 동시에 이것을 자기내적으로 심화시킨 듯하다.

공자는 현실을 떠나지 않음이 특징이다. 기록에서도 “선생님께서는 利와 命과 仁에 대하여는 좀처럼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고, 공자의 제자 子 貢도, “선생님께는 性과 天道를 말씀하시는 것을 얻어 들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공자는 평소의 언행에 형이상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의 논의, 일반 적으로 불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것에 관하여는 좀처럼 말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에게서도 신비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당시의 사람들을 깨우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 러므로 사실 자기는 아테네의 유일한 국보적 존재로서, 국가에 공로가 있 는 자에게 국비로 생활을 보조하여 주는 제도에 따라, “프리타니움 상”을 받을 만한 경우라고 말한다. ‘변론’에서 짐짓 자기의 사형에 대한 대안으 로 떠올렸다.

공자에게도 天으로부터 주어진 바의 사명을 볼 수 있다. 논어 堯曰편 에 보이듯이 공자에게도 古來聖王의 心法이 傳承되었다. 堯임금이 舜임금 에게 내린 垂訓으로, “舜이여, 하늘의 曆數가 그대에게 있으니 진실로 中 道를 잡을지어다. 四海가 곤궁하면 하늘의 축복이 영원히 끊어지리라.”함 과 같은 언급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공자는 ‘죽음’을 잘 말하지 않는다. 子路가 죽음에 대하여 여쭈었을 때, “生을 모르는데 어찌 死를 알리오?”라 하여 살아 있는 生을 말한다. 生을 떠난 死의 논의는 실상 空疏하게 될 우려가 없지 않다. 生을 탐구하여 그 대로 확대하면 死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대두하게 될 것이다. 死를 떠나서 는 生의 문제도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말의 실제적인 내용이 문제이다. 그리하여 공자는 生을 중심으로 말씀한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육신을 쓰고 있는 현세의 생활을 苦役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肉은 악한 것으로 본다. 자기 자신은 본디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현실의 생활에서 조급하지 않 다. 자살하면 안 된다는 것은 예외 없는 법칙이었다. 그는 죽음의 선고 직 전에 자기가족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물론, 그것 때문에 크게 구애를 받 지는 않는다. 그는 또 인간의 생명은 인간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요, 신이 부르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서 침착한 태도로 몇 시간 내에 독배 를 마실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오히려 현실에 처하여 있는 자기를 떠나서는 철학이 문제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지혜는 이 세상에 반드시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의 신과의 결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正命을 말하는 孔孟의 입장과는 다른 바가 있다. 그 지혜는 그만큼 구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동기론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철저한 동기론 자이지만 또한 시간적 인과관계와 선악응보의 사상을 보이고 있다.

공자에게도 “진실로 仁에 뜻이 있으면 악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동 기가 순수할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것도 사사롭게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다. 법도가 있어서 그대로 지키면 자기로서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실천하는 바가 된다. 따라서 반드시 그 시간 그 공간에서 알아야만 할 것이 있는 것이요, 그 이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동기를 대단히 중시하지마는 동시에 결과와의 절대적인 관계로서 파악되는 것이며, 결코 맹목적인 열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공자에 있어서 선악응보 의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내세에까지 연관을 갖는다고는 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선을 쌓는 집 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不善을 쌓는 집안에는 殃禍가 있게 된다.”고 하는 말은 그 일례가 될 것이다.


[2018 논문초록 5]

유교의 孝悌 사상과 노인복지

- 인간소외의 치유를 전망하며 -

이선경 조선대학교 객원교수

1. 이끄는 말: 한국사회 노인소외의 실태

2. 효제의 사상적 기반과 유교의 공동체 의식

3. 효제의 빛과 그늘

4. 노인소외의 극복방향으로서 효제자의 모색

5. 맺음말: 인간소외의 치유방안으로서 효제자의 의미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명구가 종종 회

자된다. 이 말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의 

양육과 성장에만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인, 장애인과 같은 취

약계층의 삶을 잘 기르기 위해서도 온 마을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적 차원을 넘어서서 이웃과 학교, 친구, 그가 속한 여러 단체

와 같은 공동체적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좋은 삶에 대한 가치관을 함축하고 있다. ‘마을’이라는 표현은 사람

의 삶은 신체를 양육하기 위한 물질적 요소를 충족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관심과 배려와 같은 인격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는다. 사 람의 삶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상호 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것은 이웃과 학교, 친구, 동호회 등 그가 속한 여러 단체와 같은 공동체에 서도 가족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따라서 노약자와 같은 취약계층의 삶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의 삶에 있어서도 상호 관심과 교류, 돌봄과 같은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배양과 그러한 마음에서 출발 하는 공동체적 삶의 양식의 모색이 좋은 삶의 모델로서 검토될 필요가 있 다는 것이다. 유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사회로 불리는 대동(大同)사회의 모 습은 이와 다르지 않다. ‘자기 부모만 부모라 여기지 않으며, 자기 자식만 자식이라 여기지 않은 사회, 노인들은 여생을 편안히 마칠 수 있으며, 젊 은이들은 쓰일 곳이 있고, 어린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사회,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자 병든 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부양받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대동사회의 모습이다.

현대 공동체주의 논의에서 한 사회는 법체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도덕 적 질서에 의해 유지된다는 주장이 있음 상기할 때, 효제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의 공동체사회를 향한 구상은 상당히 참고할 만하다. “우리 집 노인을 대하는 그 마음으로 다른 집 노인을 대하고, 우리 집 아이를 대하는 그 마 음으로 다른 집 아이를 대한다”는 맹자의 언급은 가족적 가치를 사회로 확장해 궁극적으로 대동사회를 지행해가는 유가의 기본 구상을 잘 드러낸 다. 물론 다양한 측면의 논의가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유교공 동체사회가 지녀왔던 가치관으로서 효⋅제⋅자에 대한 재인식 및 사회적 실천방안으로서 향약, 두레의 전통, 노인에 대한 국가적 대우 등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인소외는 인간소외의 한 형태로 단지 노년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에서의 소외는 가장 취약한 곳으로부터 일어나고 심화된다. 근래 노 인과 어린이에 대한 학대와 방치, 그리고 고독사 등의 문제가 급증하는 것 은 사회적 소외가 힘이 없는 약자들에게서 두드러짐을 반증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소외는 결국 사회전체 구성원에 대한 무관심 및 소외로 번져나 간다. 노인소외문제에 대한 성찰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인간소외문 제를 해소해 나가고자 하는 관심까지를 포함한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약자인 노인을 존엄한 존재로 인식하고 대우하였던 유가 의 인문정신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가장 소외된 계층을 돌 보는 일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소외를 치유하는 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18 논문초록 6]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참화와 교훈

– 東國新續三綱行實圖의 분석적 고찰 -

손승철 강원대 명예교수

1. 들어가기

2. 일본군의 만행

3. 『東國新續三綱行實圖』의 서울사람들 1) 조선시대의 『行實圖』 편찬

2) 『三綱行實圖』

3) 『續三綱行實圖』와 『二倫行實圖』 4) 『東國新續三綱行實圖』

5) 『五倫行實圖』 4. 나오기

일본군의 만행가운데 가장 심각했던 것은 인명피해였으며, 가옥 및 건물 의 파괴는 물론 각종 문화재를 약탈했다. 뿐만아니라 심지어는 왕능(선·정 능)을 파헤치거나 도굴을 서슴치 않았다. 특히 『광해군』대에 편찬한 동 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서울 함락과정과 점령 기간 중의 서울 출신 인물 들에 대한 피해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수록된 임진왜란 때에 인적 희생은 총 576건 이었고, 그것을 남녀 성비와 신분별로 분석해 보면 다음 표와 같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수록건수와 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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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피해는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여성이 남성보다 휠씬 많았다. <열녀 도>는 시기적으로 거의가 임진왜란 관련 사례이기도 하다. 그만큼 임진왜 란 때 부녀자들의 희생이 컸음을 나타내는 기록이다. 또한 신분별로도 분 석을 해보면 다음 표와 같다.


<신분별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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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이 전체의 82%를 차지하고 있으며, 천민이 양인보다도 많은 희생을 보여주고 있다. 이 통계는 동국삼강행실도 전체를 분석했을 때 양반 대 양인이하 계층의 비율이 40% : 60% 인 것을 감안하면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서울지역에 양반 계층이 많이 살았다는 주거상황 때문이 아닐 까.

한편 희생의 형태에 관해서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 국신속삼강행실도에 수록된 112건 가운데, 전사가 23건, 살해가 49건, 자결이 40건이다.


<살해와 자결의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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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체적인 형태를 보면, 살해의 경우 刺胸(가슴을 찔러 죽임), 刀殺(칼 로 죽임), 斫殺(무자비하게 죽임), 斬肢(사지를 자름), 刺殺(찔러 죽임), 受 刀(칼을 맞아 죽음), 刳腹(배를 갈라 죽임), 斷臂(팔을 잘라 죽임), 斷頭(머 리를 잘라 죽임), 割乳(젖을 잘라 죽임), 寸斬(마디를 내어 죽임), 斬腰(허 리를 잘라 죽임) 등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또한 자결을 하는 경우도 同死(함께 죽음), 投江(강으로 몸을 던짐), 投 水(몸을 물에 던짐), 溺死(물에 빠져 죽음), 投井(우물에 몸을 던짐), 同溺 (함께 물에 빠져 죽음), 墜涯(절벽에서 뛰어 내림), 投城(성에서 뛰어 내 림), 絶粒(곡기를 끊고 죽음), 自刎(스스로 목을 찌름), 自縊(스스로 목매어 죽음), 同縊(함께 목매어 죽음) 등 여러 형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지역의 인적 피해의 참상은 전쟁에 의해 죽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도 더 문제는 도성민이 식량이 부족하여 굶어 죽는 상황이었다. 1593년 2월 경 경기지역은 백성들의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즐비했고, 수복 직후인 4 월 20일 명군을 따라 서울에 들어 간 유성룡은 ‘성 안에 남아 있던 백성들 을 보니 백사람 중에 한사람 생존해 있을까 말까하고, 생존해 있는 사람들 도 모두 굶주리고 피폐하여 얼굴빛이 귀신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할 정 도로 도성의 식량난이 심각하였다.

1593년 7월 당시 조정에서 파악한 기아민의 수는 1만 7,000여 명이나 되었다. 수복 직후 도성의 인구가 5만 4,693명에서 3만 8,901명으로 줄 었다. 도성민의 인구가 1/3이상이 사망해 버린 것이다.

물론 동국심속삼강행실도가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한 경계심이나 적개 심을 진작시키기 위한 직접적인 목적을 가지고 편찬한 자료는 아니다. 그 러나 임진왜란에 대한 이러한 기억은 조선인들에게 이후 일본을 ‘불구대 천의 원수’로 각인시켰으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

임진왜란 후, 1604년 조선에서는 도쿠가와 막부의 강화에 대한 진의를 살피기 위해, 승려 유정(사명대사)를 탐적사(探賊使)란 명칭으로 일본에 파견했다. 사명대사 일행은 교토에 가서 도쿠가와 쇼군의 강화에 대한 의 지를 확인하고 피로인 3천여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사명대사 일행의 귀 국 후, 조선에서는 강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즉 일본국왕 (日本國王) 명의의 강화요청서, 임란당시 왕릉도굴범의 소환, 그리고 조선 피로인의 송환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은 국왕명의의 국서를 위조하고, 왕 릉도굴범은 대마도의 잡범으로 대치했으며, 쇄환사 편에 피로인들을 7천 여명이상 돌려보냈다. 물론 조선에서는 국서가 위조된 것이고, 도굴범도 잡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조선의 요구가 수용되었다는 명분과 외교적인 실리를 얻기 위해 1607년 강화사를 파견하여 국교를 재개했다. 하지만 사절단의 명칭은 강화를 요청하는 쇼군국서에 대한 회답과 피로인 을 쇄환한다는 의미의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였다. 이로부터 조선 후기에는 총 12회의 조선 사절이 파견되는데,  ‘통신사(通信使)’의 명칭이 다시 쓰여 지는 것은 세 번째인 1636년부터이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도 진정한 의미의 믿음과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통신사는 왕래하여 외형적으로는 화해한 것처 럼 보였지만 전쟁에 의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부족했다. 치유가 전제 가 되지 않는 화해는 허상이었다.

2차대전 이후의 독일과 폴란드, 독일과 이스라엘 간의 치유의 노력이 하 나의 예가 될 것이다. 현재 한일간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문제 나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판결도 치유가 없는 봉합이 만들어 낸 필연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 · 일 간에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사무국 공지사항 및 후원현황>

1. 본 기념사업회의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 및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무실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우사단로10마길 26, 2층 (보광동)

▶ 사무실 주소 : 사단법인 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

▶ 전화번호 : (02) 546-0886

▶ E-mail : yeskbs@hanmail.net

2. 2019년도 定期總會가 아래와 같이 개최되오니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초청장은 별도로 우송해드리겠습니다,)

◇ 일 시 : 2019. 04. 27(土) 17:00-17:30

◇ 장 소 :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4층 31409 첨단강의실

◇ 안 건 : 2018년도 業務 報告, 監査報告, 決算報告

◇ 안 건 : 2019년도 業務計劃 및 豫算案 審議

3. 춘계 학술대회가 아래와 같이 개최되오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초청장은 총회 초청장과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 일 시 : 2019년 4월 27일(토) 15:00-17:00

◇ 장 소 :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31409호 첨단강의실

◇ 후 원 : 한국철학연구소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 회비와 誠金은 본회 계좌번호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 국민은행 032-25-0015-570  (사)중봉조헌기념사업회

후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18년도 회비 및 찬조금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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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및 위원 명단>


회장

李東俊 성균관대 명예교수


부회장

金文俊 건양대학교 교수


상임이사

趙性浩   ㈜이엘푸드코리아 대표


이사

郭信煥   숭실대학교 교수

金文俊 건양대학교 교수

宋俊彬   南澗祠 儒會 회장

安大淳   전라남도 지명위원회 위원

李根在   롯데정보통신 ㈜이비카드 대표이사 李東俊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李相星   홍익대부속여고 교장 趙性浩   ㈜이엘푸드코리아 대표 崔英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崔一凡   성균관대학교 교수

韓明熙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전 국악원장

池俊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전 국악원장

李相益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전 국악원장


감사

柳七魯   전 한남대학교 교수, 인문대학장

趙鐘英   배천조씨 문열공종회장


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

사무국 02) 546-0886

E-mail : yeskbs@hanmaill.net

주 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우사단로10마길 26 2층 (보광동) 李相星   사무총장, 홍익여고 교장, 성균관대 겸임교수

李善慶   중봉사상연구원 총간사 姜保承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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